[전광우 칼럼] 자긍심 잃은 민족과 국가에 미래는 없다(조선일보2016.08.31)

작성자
세계경제연구원
작성일
2016-08-31 16:12
조회
45

[朝鮮칼럼 The Column] 자긍심 잃은 민족과 국가에 미래는 없다




입력 : 2016.08.31 06:42







전광우 연세대 석좌교수·前 금융위원장


미국 국민으로부터 가장 큰 존경과 사랑을 받는 역대 대통령을 꼽으라면 아마도 35대 대통령을 역임한 존 F. 케네디일 것이다. 그는 1962년 쿠바 미사일 사태로 핵전쟁 문턱까지 갔던 절체절명의 시기에 결단과 용기로 세계 핵전쟁의 위기를 넘긴 지도자로 기억되기도 한다. 반세기 전 쿠바 사태가 작금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제) 국내 배치 이슈와 오버랩되면서 오래전 읽은 케네디 대통령 자서전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평소 집안에서는 형제간에 치열히 경쟁하되, 대외적으로 가문과 나라를 지키는 데에는 철저히 하나로 뭉치라'는 케네디 부친의 가르침이다. 케네디 대통령의 맏형 조지프 케네디는 2차대전 때 전사한 전쟁 영웅이었다.

외세(外勢) 앞에서의 내분(內紛)은 국가적 자존감과 사회적 결속력 부족에서 생긴다. 국민적 자긍심과 애국심은 동전의 양면이다. 한반도 사드 배치는 북핵 위협과 미사일 도발로 야기된 안보 위기 극복을 위한 주권적 선택임에도 중국의 오만과 무례는 도를 넘었다. 그러나 그 못지않게 당혹스러운 건 국내 정치권 및 정부의 어설픈 대응과 지역사회 반발이다. 사드 배치 찬성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은 상황에서 "내 뒷마당에는 안 된다(NIMBY)"라는 지역 이기주의적 갈등은 안타까운 일이고, 사드 문제를 둘러싼 여야 간 대립은 더욱 경계해야 할 일이다.

얼마 전 국제 콘퍼런스에서 만난 중국 국제학계의 대표적 인물 주펑(朱鋒) 난징대 국제관계학원 원장은 "한국에서 남·남 갈등이 계속되는 한, 중국 전략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다"는 뼈아픈 지적을 했다. 우리 스스로 국익을 우선하는 결집된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 어떤 외교적 노력도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한국의 2016년 국가경쟁력지수 중 '사회적 결속' 점수가 2012년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평가는 우리나라 국론 분열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이미지 크게보기24일 오후 경북 김천 종합운동장에서 6천여명( 경찰 추산 )의 김천 시민들이 모여 사드 배치 반대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김종호 기자


외세 앞에서 내분 양상은
자존감·결속력 부족에서 생겨
국익 우선하는 모습 보여야
외교적 실효 거둘 수 있어
내달 초 G20 정상회의서
사드 설득 기회 잘 살려야



중국 앞에 서기만 하면 작아지는 우리와 대조되는 나라가 베트남이다. 아시아의 '새로운 호랑이'로 떠오른 베트남은 금년에 세계은행 기준으로 처음 중진국 대열에 올랐다. 베트남에 '한강의 기적'은 부러움과 배움의 대상이지만, 오히려 우리가 한 수 배워야 할 게 있다. 베트남은 경제 규모 면에서 한국의 15%, 일인당 소득은 10% 수준에 불과하지만, 과거 수차례 무력 충돌에서부터 작금의 남중국해 분쟁에 이르기까지 민관군(民官軍)이 하나 되어 중국에 당당하게 맞서고 있다. 이런 군사적 긴장 관계 속에서도 양국 간 투자 및 교역 규모는 계속 확대되어 왔다.

작은 나라가 주변 대국들 틈새에서 강한 생존력을 보인 경험은 이스라엘이 좋은 예다. 1967년 여름, 이스라엘·아랍 간 '6일 전쟁'을 대승리로 이끈 모셰 다얀 장군은 승리의 원인이 신무기가 아니라 이스라엘 국민의 '불타는 애국심'과 '희생적 리더십'에 있었다고 회고한다. 당시 사상자 대부분이 아랍 측에서는 사병이었던 반면, 이스라엘에서는 장교였다는 기록은 전설이 되었다. 외세에 맞서는 단결력과 애국심은 지도자들 하기에 달렸고, 국력은 솔선수범과 자기희생의 리더십에서 나온다는 의미다.



이미지 크게보기사드 배치 유력지인 경북 성주군 초전면 성주골프장. 1∼2시 방향의 골프장 끝 부분이 사드 배치 유력지로 거론된다. /연합뉴스


지난주 막을 내린 리우올림픽의 하이라이트는 영국과 일본의 대약진이다. 중국을 제치고 미국에 이어 금메달 순위 2위를 기록한 영국은 메달 획득 선수에게 포상금을 일절 주지 않았다. 국가대표라는 명예로 충분하다는 자존감이 그 이유고,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 와중에 국민적 응집력이 높아졌다는 얘기다. 100m 달리기를 10초 이내로 뛰는 선수가 없는 일본이 400m 계주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일은 4명이 릴레이를 통해 시너지를 낸 결속의 힘을 보여준 사건이다.

유난히 더웠던 올해 여름 극장가를 달군 두 편의 영화, '인천상륙작전'과 '덕혜옹주'가 남기는 잔영(殘影)은 하나다. 국권 잃은 나라의 비극이요, 힘없는 나라 백성이 겪는 시련이다. 치욕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신 바짝 차리라는 메시지다. 긍정과 열정의 에너지가 헬조선, 수저 계급론과 같은 자기비하를 대체하려면 사회 각계 지도층부터 모범을 보여야 한다. "한국인답게 행동하자"는 표현이 자연스러워져야 국격(國格)도 높일 수 있다. 자존감 없는 국민은 위대한 국가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침 다음 달 초 세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다. G20 정상회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해결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핵심 역할을 수행했던 국제협력체제인 만큼, 사드 설득 외교의 성공을 위한 절호의 기회를 잘 살리도록 국민적 역량을 결집해야 할 때다.



조선일보2016.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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