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벤 버바이엔 회장 "다른 문화 수용하는 능력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결정"

작성자
한국경제
작성일
2007-03-10 00:00
조회
2795
[대담] 벤 버바이엔 회장 "다른 문화 수용하는 능력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결정"


"단순히 제품만 파는 시대는 지났다. 문화를 이해하고 소비자의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영국 브리티시 텔레콤(BT)의 벤 버바이엔 회장은 석호익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원장과 가진 대담에서 글로벌 기업이 추구해야 할 가치에 대해 이같이 강조했다.

세계적 통신기업인 BT의 최고경영자(CEO)와 정보통신 연구기관장의 만남은 지난 8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이뤄졌다.

1952년생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정보기술(IT) 전문가답게 IT산업이 몰고올 변화상을 짚어보고 고용과 양극화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서도 심도있는 의견을 나눴다.

버바이엔 회장은 "정부의 규제는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면서 규제의 투명성을 역설했다.

▶석 원장=버바이엔 회장이 최고경영자(CEO)로 부임한 뒤 BT가 큰 성과를 거둔 것으로 알고 있다. 그간의 성공 요인과 BT의 비전을 설명해 달라.

▶버바이엔 회장=굉장히 어려운 시기였다. 하지만 변화할 수 있는 기회였다. 우선 고객에게 포커스를 맞췄다. 서비스를 만들어 고객에게 팔기보다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데 주력했다. 새 비즈니스가 기존 사업을 잠식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다음 세대를 대비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석 원장=한국은 초고속 인터넷이 거의 모든 가정에 보급됐고,휴대폰은 갓난아이를 제외한 모든 국민이 이용한다. 지하철 안에서도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한다. 디지털기회지수(DOI)는 세계 1위다. 컨버전스(융합)에서도 뒤지지 않아야 하는데.

▶버바이엔 회장=컨버전스는 유무선 통신 등 특정분야에서만 벌어지는 현상은 아니다. 산업간,공급자와 소비자간에도 나타난다. 소비자는 이제 사용자에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 가치를 창조하고 있다. UCC(사용자제작콘텐츠)를 보라.오히려 이용자로부터 콘텐츠를 구매해야 하는 상황까지 왔다. 세계적으로는 더 큰 융합이 이뤄지고 있다.

▶석 원장=한국에서도 인터넷 기반 TV(IPTV) 인프라를 오래 전에 갖추고도 서비스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BT에서 추진하는 'BT 비전'의 전망을 말해 달라.

▶버바이엔 회장=IPTV가 정보를 가정으로 전달하는 대체수단이냐,전혀 새로운 것이냐의 문제다. TV가 처음 도입됐을 때 영화 스크린을 집안으로 옮겨 놓은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TV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 IPTV도 마찬가지다. TV를 인터랙티브(상호작용)하게 만들어준다. 단순히 TV 신호를 옮기는 것으로 보면 안된다. 축구 중계를 보다가 히딩크 감독이 누군지 궁금하면 중계하는 사람에게 실시간으로 물어볼 수 있다. BT가 추구하는 것도 케이블TV를 대체하는 정도의 개념이 아니다. 소비자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으로 발전시키기를 원한다.

▶석 원장=영국에서 IPTV를 도입할 때 규제는 어땠는가. 컨버전스 시대에 정부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버바이엔 회장=방송업계는 이미 초고속 인터넷 시장에 진출했다. 통신사업자의 방송 진입에도 유연하게 대처했다. 정부 규제는 적을수록 좋다. 공정한 경쟁과 투명성,규제의 명확성이 중요하다. 기업의 자율성도 보장해줘야 한다. 규제로 일정 수준의 목표를 달성하고 난 뒤에는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석 원장=IT산업 발전에는 역기능도 있다. 앞으로 광대역통합망(BcN)이 구축되고 네트워크가 고도화되면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다. 네트워크에 장애가 생기면 은행이나 공장이 마비되고 사회생활 전반에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버바이엔 회장=중요한 지적이다. 6개월 전 지진이 있었지만 우리 고객은 불편을 겪지 않았다. 사고가 발생할 경우 우회하도록 네트워크를 설계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상에서는 과거와 같은 네트워크 디자인으로는 안정성을 보장할 수 없다.

▶석 원장=과거에 가입자가 적었을 때는 통신사가 투자를 해도 시장점유율이 상승하고 매출액이 늘었다. 그러나 유선전화와 이동전화 모두 포화상태가 됐다. 네트워크가 고도화돼 인터넷 전화로 전환할 경우 '자기잠식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버바이엔 회장=물론 단위당 매출은 줄 수 있다. 하지만 비용도 그만큼 줄어든다. 반면 소비 자체는 늘어난다. 차세대망이 사람뿐만 아니라 기기끼리 연결하기 때문에 시장은 더 커질 것이다. 물론 시장확대가 매출증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더 낮은 비용으로 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된다. BT가 모든 네트워크를 다 소유할 필요가 없다. 다른 기업이나 인프라의 장점을 활용해 가치를 창조해야 한다.

▶석 원장=MMO2 매각 후 BT는 무선사업부문을 갖고 있지 않다. 보다폰과의 제휴를 통해 'BT퓨전'을 제공하고 있지만 본격적인 컨버전스 시대에 대비해 무선사업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되는데.인수합병이나 주파수 경매 등에 참여할 생각은 있는가.

▶버바이엔 회장=보다폰과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유무선이 융합되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차세대 이동통신인 와이맥스(와이브로) 서비스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관건은 가격이다. 결국 주파수 가격이나 할당 대가 등이 관건이 될 것이다. 검토 중이지만 아직 방향은 서지 않았다.

▶석 원장=한국에서 IT산업은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16%,수출의 30% 이상을 차지했다. 경제성장률 기여도가 46%에 달한다. 글로벌 전략과 관련해 조언해달라.

▶버바이엔 회장=지금은 물리적인 거리는 의미가 없다. 예전에는 우수 두뇌를 본사로 데려 와야 했지만 이젠 다른 나라에 있어도 실시간으로 일할 수 있다. IT는 고객과의 거리도 단축시켰다. 한국은 제품만 볼 때는 절대적으로 경쟁력이 있다. 반면 어느 수준에 이르면 앞으로 나아가는 데 문제가 있다. 중요한 요소는 문화다. 열린 사고는 다른 국가,기업의 문화와 결합돼 더 강한 기업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석 원장=IT 발전은 생산성을 전반적으로 향상시키지만 고용을 감소시킨다는 지적이 있다. IT가 고용에 기여하려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나.

▶버바이엔 회장=기업 활동의 주된 목표가 고용창출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좋지만 그 자체가 기업의 목적은 아니다. IT분야에서는 어제의 기술,오늘의 역량만으로는 미래에 적응할 수 없다. 전에는 상품만 팔면 됐지만 지금은 솔루션을 잘 팔아야 한다. 기업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할 의무가 있다.

▶석 원장=세계적으로 양극화가 큰 문제다. 한국에서도 제조업과 서비스업,대기업 중소기업 간 양극화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양극화를 IT로 극복할 수 있는가.

▶버바이엔 회장=고객 입장에서는 질 좋은 제품을 값싸게 구매하고 싶어한다. 시장개방으로 얻는 이익은 크다. 하지만 세계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소득격차가 세계화의 결과라며 보호주의를 주창한다. 이게 정부의 딜레마다. 소득격차는 지식기반사회가 되면서 더 벌어지고 있다. 이를 극복하려면 교육과 재교육을 시켜야 한다.

▶석 원장=한국 IT산업과 관련해 정부나 기업,국민이 해야할 일이 있다면.

▶버바이엔 회장=18세기에 프랑스 한 정치인이 이런 말을 했다. 'If something is inevitable,you'd better embrace it(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변화를 좋아하건 좋아하지 않건,멈춰서는 안된다. 어차피 일어날 일이라면 올바르게 대처하는게 중요하지 막으려는 건 옳지 않다.

정리=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
사진=김정욱 기자 haby@hankyung.com


입력시간: 03/09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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