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바이엔… “BT의 미래사업은 통신+IT 토털 서비스”

작성자
조선일보
작성일
2007-03-15 00:00
조회
2506
버바이엔… “BT의 미래사업은 통신+IT 토털 서비스”


영국의 BT(브리티시 텔레콤)는 무려 161년의 역사를 가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통신회사다.

90년대 후반까지 BT는 전성시대를 구가했다. 영국 통신시장의 독과점적 지위를 통해 쌓은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이동통신과 해외사업에 수백억달러를 투자했다. 국내의 LG텔레콤에도 98년 6000억원을 투자해 24%의 지분을 매입하기도 했다. 국내 최대 유선통신 업체인 KT도 BT에 임직원을 파견해 벤치마킹할 정도였다.

그러나 BT는 2000년대 초반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며 세계 통신시장의 주류에서 밀려나는 수모를 겪었다. 3세대 이동통신에 대한 과도한 투자와 무분별한 해외진출이 원인이었다. BT는 2000년대 초 영국·독일의 3세대 이동통신 사업면허(주파수)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약 54조원의 부채를 떠안게 됐다. 영국 정부의 강력한 통신시장 정책도 악영향을 줬다. 영국 방송통신위원회(Ofcom)는 BT가 보유한 유선통신망을 분리, 다른 통신 사업자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위기에 처한 BT는 2002년 벤 버바이엔(Ben Verwaayen·55)을 구원투수로 투입했다. 글로벌 통신업계의 경영 경험이 풍부한 그는 사장(CEO)에 취임한 뒤 대대적인 구조조정 작업에 나섰다. 이동통신 재판매 사업과 IPTV(인터넷TV) 사업에 진출하고, 해외투자는 성공률이 높은 분야에 집중했다.

버바이엔 사장이 이끄는 BT는 2005년까지 3년간 체질개선에 성공, 지난해부터 매출이 늘어나는 등 재도약을 시작했다. BT의 부침(浮沈)은 KT 등 국내 통신업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방한한 버바이엔 사장을 만나 BT의 전략과 세계 통신시장의 미래를 들어봤다.

그는 인터뷰 내내 진지한 표정이었으며, 껄끄러운 질문에도 거침 없이 답했다.

―BT가 미래 사업으로 추진하는 ‘21세기 네트워크(21CN) 사업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통신회사인 BT를 통신·IT 토털서비스 회사로 변화시키는 사업이다. 과거 데이터망에 음성 네트워크가 접목되는 것처럼 복잡한 네트워크를 하나의 완전한 IP(인터넷 프로토콜) 네트워크로 바꾸는 작업이 21세기 네트워크 구축사업이다. 이는 BT가 추진하는 뉴웨이브 서비스와 관련 깊다. 뉴웨이브 서비스는 유선통신과 무선통신, 통신과 미디어의 융합이다.”

―BT는 최근 IPTV 사업을 시작했다. IPTV의 성공가능성을 어떻게 보나?

“몇몇 사람들은 IPTV와 기존의 TV가 지상파·케이블 또는 전화선 같은 전송망의 차이일 뿐, 결국 최종 제품은 같다고 본다. 그래서 가격경쟁만이 해결책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나는 IPTV를 전혀 다른 관점에서 본다. IPTV는 PC처럼 지극히 개인적이고 쌍방향적인 것이 특징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예를 들어 내가 요리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IPTV가 안다면, 전세계의 모든 요리 프로그램을 저절로 찾는다. 그래서 내가 집에 도착하면, TV가 “안녕 벤, 내가 오늘 한국에서 정말 환상적인 요리 프로그램을 발견했어. 그것을 보겠어?”라고 말할 것이다. IPTV는 또 광고주들에도 “벤은 요리는 좋아하지만 차에는 관심이 없어. 그러니 자동차 광고 대신 요리광고를 보여주자”고 할 수도 있다. 축구경기를 시청할 때, 해설자의 말을 듣는 대신 다른 곳에서 경기를 보고 있는 친구들과 대화를 할 수도 있다. 방송을 활용하는 동시에 다른 기능을 추가하는 것이다. IPTV의 미래는 밝다고 본다.”

―영국에서 IPTV 사업을 하는데 기존의 방송사들의 저항은 없나?

“물론 있다. 아무도 쉽게 (기득권을) 포기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IPTV는 기존 방송과는 경쟁하지 않고, 다른 사업모델을 찾을 것이다. 그들이 뭔가 다른 것을 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면 정말 좋은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이는 미디어 시장의 발전을 가져올 것이다.”

―영국의 방송들은 BT가 운영하는 IPTV에 프로그램을 실시간으로 제공하고 있나?

“그렇다. 지상파 프로그램을 IPTV 시청자가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우리는 방송사의 지적재산권을 존중하며 이를 위해 비용을 지불한다.”

―BT가 2002년 이동통신 자회사를 분리해놓고, 최근에 다시 이동통신 사업을 하는 이유는?

“물리적인 자산을 소유해야만 사업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동통신 사업에 나선 것은 유무선 통합 서비스를 하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필립스와 같은 회사와 통신서비스를 제공하기로 계약을 맺을 때, 유선통신뿐만 아니라 무선(이동)통신 서비스도 당연히 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현재 전세계에 있는 기업들에 수억 개의 무선 설비를 임대해 제공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가 불편하지 않도록 서비스하는 것이다.”

―유선통신 서비스 수요가 줄어들고 있다. 유선통신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

“이제 유선통신과 이동통신, 위성통신을 구별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소비자 입장에선 모두 같은 통신 서비스일 뿐이다. 언제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는 새로운 통신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다. 소비자들은 집·회사·기차에서 같은 수준의 통신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어한다. BT는 네트워크·주파수·위성을 통해서 종합 통신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BT가 2000년대 초반 위기를 겪게 된 원인은?

“사업을 너무 확장했고, 그로 인해 위기를 겪었다. 이 책임은 누구에게도 돌릴 수 없다. 회사는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정부의 규제는 때로는 도움이 되었으며, 때로는 그렇지 않았다. 피할 수 없는 사항이다. 우리는 미래 지향적이며 혁신적으로 규제에 맞섰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연연하는 것보다 앞으로 전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영국은 가능성이 많은 시장이다.”

―5년 전만 해도 부채가 많았다고 들었다. 어떻게 정상화에 성공했나?

“BT는 급진적인 변화를 추진해왔다. 5년 전, 우리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를 이겨내기 위해 세 가지를 시도했다. 첫째, BT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글로벌사업에 집중했다. 둘째는 음성·영상 데이터를 동시에 여러개 채널로 전송하는 광대역 통신시스템 사업을 추진한 것이다. 셋째로 고객 중심적인 사업을 펼치기로 했다. 조직과 전략을 바꾼 결과 19분기 연속으로 순이익이 늘어났다. 실적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업이 변화에 맞설 수 있는 내공을 쌓았다는 점이다.”

―BT의 조직문화를 어떻게 바꿨나?

“변화는 CEO부터 해야 한다. 직원들은 매일 출근하면서 일을 생각하기 보다는 상사가 원하는 것이 뭔가를 생각하기 때문에 CEO는 새로운 성공모델을 찾고, 조직이 이를 따라갈 수 있도록 공식화해야 하며, 직원들이 성공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CEO는 기업의 경영진이나 간부들에게는 엄격하되, 일선 직원들에게는 관대하고 유연해야 한다.”

―최근 해외사업 중 특히 인도 투자에 적극적인 이유는?

“인도가 새로운 서비스를 개발하는데 필요한 능력을 많이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사업에서 특정 지역의 최고 인재를 다른 지역의 최고 인재와 결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도는 소프트웨어 개발능력이 뛰어난 인재가 많다. 해외 투자지역을 선택할 때는 그 곳의 인재들의 능력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지, 나라 자체를 기준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BT는 해외 고객이 인도시장에서 사업기회를 포착하는데 도움을 주는 서비스를 한다던데.

“글로벌 비즈니스에 새로운 트렌드가 나타나고 있다. 예전에는 케이블이나 하드웨어 등 기업이 보유한 자산이 중요했으나, 현재는 능력이 핵심이 됐다. 예를 들어, 최근 보안·CRM(고객관계관리)·어플리케이션 통합과 관련한 소비자들의 요구가 많다. 기업이 이를 해결해 주려면 물리적 능력(muscle)보다는 기술적 능력(brain)을 가져야 한다. BT는 인도 통신업계 2위로, 능력을 키웠기 때문에 미국·유럽 고객들의 인도진출을 돕고, 인도기업의 해외진출도 지원하고 있다.”

―한국의 통신회사를 평가한다면?

“한국의 통신회사는 제품위주로 볼 때는 절대적인 경쟁력이 있다. 반면 기업의 구조·문화에 내재돼 있는 요인들 때문에 어느 수준에 이르면 더이상 앞으로 나아가는 데 문제가 있다고 본다. 기업은 생산능력뿐만 아니라 시장의 변화를 따라갈 수 있는 유연성과 사고력이 있어야 한다.”



<키워드>

BT

1846년 텔레그래프(전신전보) 서비스 업체로 설립된 영국 우체국 산하 일렉트릭 텔레그레프(Electric Telegraph)사가 모체다. 1980년에 우체국의 통신사업 부문이 브리티시 텔레콤으로 분리됐다. 1984년부터 1993년 사이에 민영화했다. BT라는 이름을 쓴 것은 1991년부터였다. 현재 영국을 포함 전세계 170개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주요 사업분야는 IT 네트워크 유무선 통신, 광대역·인터넷, 통신망 임대·관리 서비스 등이다.

벤 버바이엔 사장

1952년 네덜란드에서 출생, 위트레흐트 대학에서 법학·국제정치학을 전공했다. 네덜란드 PTT텔레콤 사장과 루슨트테크놀로지 부사장을 지냈고, 97년 BT그룹에 합류했다. 2002년 위기에 빠진 BT의 CEO를 맡아, 강력한 구조조정과 사업다각화를 통해 회사를 정상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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