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우 이사장 이코노미조선 인터뷰 (2019.1.7)

작성자
세계경제연구원
작성일
2019-01-07 19:15
조회
1516
[전문가 인터뷰 5]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한국, 규제 자체보다 예측이 어려운 게 더 큰 문제”

282호 2019년 01월 07일

전광우 서울대 경제학과, 인디애나대 경영학 박사,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초대 금융위원장

전광우
서울대 경제학과, 인디애나대 경영학 박사,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초대 금융위원장

“우리나라의 규제 장벽이 높은 것도 문제지만 규제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는 것도 큰 문제다. 정권이 바뀌면 규제 환경이 달라지는 건 물론이고 같은 정권에서도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장기적 안목으로 투자하기 어렵다’고 불평하는 이유다.”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올해 우리나라 경제가 극복해야 할 최우선 과제로 규제 완화를 꼽았다. 전 이사장은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와 초대 금융위원장(2008~2009년)을 지낸 국제금융 전문가다. 관료가 아닌 민간 전문가로는 처음으로 금융부처 수장에 임명됐을 만큼 전문성과 리더십을 인정받았다. 언제나 환한 미소로 사람들을 대하는 까닭에 ‘미스터 스마일’로도 불리지만, 업무에서만큼은 철두철미한 원칙주의자로 이름이 높다.
전 이사장은 우리나라의 지난 두 차례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데 기여했다. 세계은행 근무 시절 동아시아 외환위기 여파 극복에 역할을 해달라는 정부의 요청에 23년간의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해 4명의 재정경제부 장관(이규성·강봉균·이헌재·진념) 특보를 지내며 위기 극복에 한몫했다.
금융위원장 시절에는 리먼사태 이후 신속·과감한 초기대응으로 우리나라가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에서 비교적 빨리 벗어나는 데 기여했다.
2013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서 물러난 뒤 연세대 경제대학원 석좌교수로 후진을 양성하던 전 이사장은 얼마 전 사공일 전 재무부 장관의 후임으로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에 취임했다. 세계경제연구원을 설립해 지난 25년간 연구원을 이끌었던 사공 전 장관은 일선에서 물러나 명예이사장으로 활동한다.
이사장 취임을 하루 앞둔 지난해 12월 31일 전 이사장을 서울 삼성동 세계경제연구원 사무실에서 만났다. 예의 환한 미소로 기자를 맞은 그는 부쩍 커진 대외 리스크 속에서 우리 경제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차분히 이야기를 풀어갔다.

1년 사이 새해 경제 전망이 ‘낙관’에서 ‘비관’으로 바뀐 느낌이다.
“미·중 무역마찰에 미국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에 속도를 낸 것도 한몫 거들었다. 금리 인상을 회복기에 경기가 과열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정상화 노력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어쨌거나 경기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건 분명하다. 그 와중에 글로벌 증시가 4분기 들어 큰 폭의 조정 국면에 돌입했다. 흔히 증시를 1년에서 1년 반 이후 경기에 대한 선행지수로 본다. 앞으로 1~2년 경기 흐름을 부정적으로 보는 의견이 많다는 뜻이다.”
새해 우리 경제 흐름은 어떨까.
“성장 동력이 축소되고 대내외 리스크는 확대되는 상당히 도전적인 상황이다. 미국과 중국, 유럽 세 지역의 경제 상황이 모두 좋지 않기 때문에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우리 수출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 경제가 경착륙한다면 큰 문제다. 중국 경기 둔화가 어제오늘 이야기는 아니지만, 과도한 부채와 부동산 버블, 그림자금융 문제 등이 겹치면서 구조적인 장기침체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우리나라 수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반도체 수출 경기가 하강 조짐을 보이는 것도 악재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 유럽 경제의 변수도 우리 경제에 영향을 줄까.
“미국과 중국 경제가 악화되는 상황에서 유럽 경제까지 나빠지면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좋을 것이 없다. 영국 경제가 나빠지면 영국과 교역에서 큰 폭의 흑자를 보고 있는 유럽 1위 경제대국 독일에 타격이 전해질 수밖에 없다. 이탈리아 재정 문제가 악화되면 2011년 유로존 위기와 비슷한 상황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상황을 예의 주시하며 대책을 세워야 한다.”
1500조원에 달하는 우리 가계부채는 심각한 문제 아닌가.
“모든 위기에는 사전 징후가 있다. 우리 경제의 경우 가계부채가 아킬레스건인 것은 틀림없다. 그렇기 때문에 부채를 감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유지하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경제가 살아나야 한다. 그래야 고용과 소득이 늘고, 늘어난 소득 일부로 부채를 상환하는 선순환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경기가 둔화하면 부채 상환 능력이 떨어져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초저금리 시대가 저물고 있다. 금리가 오를 경우 상환 부담이 커질 수 있기 때문에 더 큰 문제가 될 것이다.”
부채 중 부동산담보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높지 않나.
“그런 상황에서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면 담보 가치 하락으로 상환 여력이 떨어지면서 대출 부실화로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경제 정책은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충격이 과하면 문제가 된다. 경착륙을 피해 가계부채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
새해 우리 경제의 시급한 과제는.
“미·중 무역전쟁의 장기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출과 투자 채널 다변화 등 대응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베트남을 교두보로 하는 ‘신남방정책’ 추진은 바람직한 대응이라고 생각한다. 대외 리스크가 커질 때 제일 중요한 건 경제 체질 개선이다. 경제 활력과 산업 경쟁력을 키우려면 규제개혁과 노동시장개혁이 필수다. 새로울 건 없는 이야기지만 실천이 잘 안 되는 게 문제다. 규제개혁과 노동시장개혁 없이 기업 투자가 늘기 어렵다. 투자가 늘어야 경제가 활성화되고 일자리 창출도 가능해지는데 말이다.”
현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정책은 어떻게 생각하나.
“대부분의 정책은 좋은 의도로 추진된다. 하지만 정책에 대한 평가는 기대했던 순기능과 역기능 중 어느 쪽이 크냐를 가지고 판단해야 한다. 부작용이 크다면 궤도 수정이건 속도 조절이건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소득주도 성장의 핵심인 최저임금 인상의 경우 도입 취지에는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소득 양극화 심화는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우 자영업자, 그중에서도 영세 자영업자 비율이 높다는 점이다. 최저 임금을 올려 어려운 이들을 도와주려 했는데, 오히려 영세 자영업자들이 피해자가 됐다면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미국과 기준금리 차이가 벌어지고 있는데 외국인 자금 이탈은 걱정 안 해도 될까.
“우리나라와 미국의 기준금리 격차가 0.75%포인트로 벌어졌다. 그렇다고 금리 차만으로 대규모 자금 이탈이 촉발되진 않는다. 전체적인 금융시장 여건과 외환보유고 등 대외건전성이 함께 나빠질 때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경제 상황이 그 정도로 나쁘진 않다. 외환보유고는 사상 최고 수준이다. 그렇다고 안심해도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금리 차에 과민하게 반응해 한국은행의 금리 결정에 과도한 영향을 주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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