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우 칼럼] 국민연금 주주권행사 제대로 하려면(서울경제 2018.06.05)

작성자
세계경제연구원
작성일
2018-06-05 11:37
조회
34

[전광우칼럼] 국민연금 주주권행사 제대로 하려면


독립성·전문성·신뢰성 확보해야
부작용 없는 주주권행사 가능
기금운용 혁신 등 현안 해결을





  • 2018-06-05 17:08:53

  • 사외칼럼 23면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전광우칼럼] 국민연금 주주권행사 제대로 하려면
국내 최대의 기관투자가인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과 투자자국가소송(ISD) 뉴스로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의 행보가 새삼 주목받으면서 해당 기업의 대주주인 국민연금의 움직임에 시장의 촉각이 모아진다. 최근에는 대한항공 ‘오너리스크’와 관련한 주주권 행사까지 국민적 관심사가 됐다. 게다가 다음달로 예정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으로 연기금 주주권 행사 논쟁은 한층 가열될 것으로 전망된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지난 2010년 영국에서 처음 제정된 후 세계 20여개국에서 채택됐지만 도입 효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기업 지배구조와 배당수익률 개선 등의 긍정적 견해와 함께 무리한 경영 간섭과 경영권 침해로 기업 경쟁력과 투자가치를 오히려 떨어트린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적용 수준·대상·범위 등 ‘디테일의 악마’를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주주로의 권리이자 국민 노후재산의 선량한 관리자로의 의무이지만 자칫 위험이 큰 ‘판도라의 상자’라는 경고가 이어진다.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7%를 점유하고 있으며 5% 이상의 보유지분을 가진 상장기업은 약 300개, 1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핵심기업도 90개에 이른다. 해당국 자본시장 비중이 1% 미만인 세계 주요 연기금에 비해 국내시장 비중이 압도적인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파급력이 훨씬 크다. 주주권 행사 확대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고 부작용을 차단할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하는 이유다.

주주권 행사의 핵심 선결조건은 기금운용의 독립성 확보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새로운 이슈가 아니다. 과거 노무현 정부, 그리고 이명박 정부를 거치며 다양한 논의가 있었지만 본격적인 실행이 미뤄진 배경은 의사결정의 독립성을 담보할 기금체제 개혁이 미진했기 때문이다. 최근 특정 개별 기업(대한항공)과 관련해 보건복지부 장관의 주주권 행사 계획에 관한 구체적 발언은 기금 독립성 훼손의 소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국민연금의 투자와 의결권 관련 사항은 기금운용 원칙에 따라 국민연금의 자율적 판단으로 결정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주주권 행사를 정당화할 수 있고 시장 왜곡이나 주주 소송 등 역풍도 막을 수 있다. 2,200만 가입자가 주인인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정치적·정책적으로 악용되지 않는다는 제도적 장치가 필수라는 뜻이다.

기금운용의 전문성 제고와 신뢰 회복도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의 선행조건이다. 독립성 강화의 명분과 실익을 위해 국민연금을 기금운용 분야의 최고 전문가 그룹으로 키워야 한다. 투자자 신뢰와 기금운용 경쟁력은 물론 주주권 행사에 대한 올바른 결정은 세계 3대 연기금의 위상에 걸맞은 역량을 요구한다. 국제적 의결권 자문사인 ISS 등 국내외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제대로 판단하려면 탁월한 전문성과 식견을 가져야 한다. 국민연금의 전문 인력 확충은 시급한 현안이다.

주주권 행사 주체의 책임성 강화도 해결 과제다. 최근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안에 대한 의결권을 민간위원회로 넘기면서 국민연금이 자신의 책임을 방기하고 권리를 포기했다는 지적이 일었다. 지난 몇 년간 혹독한 트라우마를 겪은 담당자들의 조심스러운 자세는 이해되지만 복지부동이나 ‘결정 장애’는 극복해야 할 문제다. 국무회의 결정 사안을 국민경제자문회의에 미루는 것은 잘못이듯이 외부 자문위원회에 떠넘기기가 능사는 아니다. 더욱 책임 있고 적극적인 의사결정 환경이 바람직하다. 소극적 기금운용의 피해는 국민들의 몫인 만큼 연기금 의사결정에 대한 과도한 책임 추궁 관행도 개선돼야 한다.

주주권 행사 확대를 통한 책임·투명 경영 촉진과 장기적 투자수익률 제고를 위한 노력은 나름 의미 있지만 기금운용 체제 혁신 등 근본적 현안 해결이 먼저다.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에다 세계 경제와 연기금 수익 전망이 악화하는 현시점에서 기금운용 역량과 수익 경쟁력을 높이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주주권 행사의 순기능은 살리더라도 무리한 경영 개입은 투자기업 가치를 떨어트리는 역기능의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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