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우 칼럼] 일시적 ‘안정제’보다 근본적 ‘치료제’가 필요한 때(서울경제 2018.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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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연구원
작성일
2018-03-27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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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우 칼럼] 일시적 ‘안정제’보다 근본적 ‘치료제’가 필요한 때

일자리 만들기·구조조정 등
손쉬운 혈세투입 유혹 떨치길
성장률·경제 역동성 높이려면
과감한 구조 개혁에 나서야



  • 2018-03-27 16:49:29
  • 사외칼럼 38면


[전광우 칼럼] 일시적 ‘안정제’보다 근본적 ‘치료제’가 필요한 때
전광우 초대 금융위원장
주요2개국(G2)의 역주행이 지구촌을 강타하고 있다. 세계 경제 질서가 흔들리고 증시 급등락으로 국제금융시장은 휘청거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발(發) 통상전쟁은 자유무역체제의 근간을 훼손하면서 보복관세로 촉발됐던 1930년대 대공황 사태의 재판(再版)을 우려하는 소리까지 나온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1인 장기집권과 공산 독재시대로의 후진은 국제사회에 엄청난 도전이고 시장경제 시스템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다. 회복세를 보이던 세계 경제는 G2 리스크로 먹구름이 짙어지는 가운데 한국은 역풍의 최대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자국 우선주의와 글로벌 패권경쟁은 외교·안보·경제 전반에 격랑을 예고한다. 불안요인이 증폭되는 대외환경 변화기에 기초체력 강화와 경제 체질개선으로 국력을 키워야 한다. 환절기에 독감 안 걸리려면 몸을 튼실하게 해야 하듯이. 당면 국정과제 해결은 일시적 봉합이 아니라 구조적 병폐에 대한 근본적인 치유가 필요하다. 이런 원칙이 지켜져야 할 주요 현안을 짚어보자.

우선 청년 일자리 대책이다. 아무리 급해도 ‘반복적 추경’과 ‘세금으로 일자리 만들기’는 정답이 아니다. 손쉬운 재정투입의 유혹을 떨치고 정공법으로 가야 한다. 잠재성장률과 경제 역동성을 높이기 위한 과감한 구조개혁이 관건이다. 치료와 수술이 필요한 때에 영양제나 안정제의 과잉처방은 체질을 약화할 뿐이다. 재정자금이 경기 활성화의 마중물 역할을 하지만 마중물이 과하면 펌프의 오작동을 일으킨다. 고용 장려금으로 청년 실업난이 해소될 수 없고 지속 가능한 양질의 일자리는 민간 투자확대로 가능하다는 것은 상식이다. 최근 세계경제포럼(WEF)의 규제환경 평가에 따르면 한국은 138개 대상국 중 105위 바닥 수준이고 노동시장 경직성은 기업투자와 고용창출의 걸림돌로 남아 있다.

복지지출 부담이 급증하는 국내 상황에서 건전재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포퓰리즘 정책이 넘치는 와중에도 유럽 경제의 견인차인 독일은 재정 관리가 가장 엄격한 선진국으로 평가받는다. 독일어로 ‘부채’와 ‘죄악’은 동의어다. 방만한 재정운영은 미래 세대에 빚을 떠넘기는 죄를 짓는 것인 만큼 나랏돈 쉽게 써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한계기업 구조조정도 마찬가지다. 고비용·저효율로 허덕이는 한국GM의 경우 공적자금 지원에 앞서 지속 가능한 경영정상화 방안이 선행돼야 한다. 철저한 고통분담을 통해 재기한 르노삼성의 경험이 보여주는 것처럼 협력적 노사관계를 바탕으로 생산성 향상과 경쟁력 회복의 선순환을 이루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만이 살길이다. 기업 구조조정이 혈세로 연명하는 실패를 막으려면 정치 논리를 떠나 이해당사자의 책임과 고통분담 원칙을 지킨다는 정부의 확고한 의지가 필수다. 당장의 충격을 줄이기보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역동적 경제생태계 조성과 산업경쟁력 제고가 답이다.

일시적 처방보다 원천적 치유가 필요한 것은 경제 문제만이 아니다. 우리가 직면한 최대 현안인 북핵 사태의 경우도 같다. 다가오는 역사적 정상회의로 극적 반전을 바라는 국민적 열망이 클수록 단기 성과에 대한 속단은 금물이다. “먼저 윙크하지 마라(don’t blink first)”는 대치국면의 협상 전략에 종종 사용되는 표현인데 서두르는 쪽이 손해 본다는 뜻이다. 북핵 문제의 올바른 해법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한 ‘항구적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대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평화적 해결’ 못지않게 ‘근본적 해결’이 키워드다.

지난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과 한미 금리 역전은 외화유출과 가계부채 위험을 키운다. G2 간 갈등 고조와 중국·러시아의 스트롱맨 부상도 세계 안보·경제의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 국제정세와 경제 기류가 급변하는 오늘날, 국익 우선의 치밀한 전략과 긴 호흡으로 국가경쟁력을 높여나가는 것이 정도(正道)다. 경제든 안보든 미봉책은 후유증을 키운다. ‘차선은 최선의 적’이라는 볼테르의 명언을 되새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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