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irman Jun's column on Chosun Ilbo (2014.02.06)

Author
IGE
Date
2019-04-15 15:00
Views
464

청마(靑馬)의 해에 노마(老馬)를 생각하다

입력 : 2014.02.06 05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Ursula von der Leyen).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이름이지만 최근 출범한 제3기 독일연정의 새로운 리더로서 메르켈 총리 후계자로 부각되면서 국내외 뉴스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인물이다. 집권 보수당인 기민당 내 개혁파로 노동사회부장관에서 여성 최초 국방장관으로 올라선 그를 작년 초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만났다. ‘고령화시대의 국가전략’에 관한 세션에 패널로 같이 참여한 그는 ‘젊은이들은 빨리 달릴 수 있다. 그러나 노인들은 빨리 가는 지름길을 안다’라는 독일 속담을 소개하면서 국가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실버세대의 고용확대 필요성을 강조하던 모습이 새롭게 다가온다.

물론 비슷한 얘기는 오래전부터 동양에도 있다. 노마지지(老馬之智) 또는노마식도(老馬識道)나 노마지도(老馬知道)로 알려진 표현이 그것이다. 한비자에 나오는 춘추시대 고사로서 군사들이 혹한 속에 길을 잃고 헤멜 때 늙은 말을 앞세워 지름길을 찾았다는 얘기로 경험 많은 사람의 지혜를 활용하라는 뜻이다.

한국의 미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도전과 과제를 꼽으라면 동북아정세 격변과 통일시대 준비를 필두로, 글로벌 패러다임 변화와 경제재도약 과제, 그리고 아마도 고령화시대 도래와 선제적 대응이 아닐까한다. 그중 고령화추세는 대부분의 국가가 직면한 문제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훨씬 더 심각한 이슈다. 빠른 고령화 속도로 지난 반세기 동안 평균수명이 20년 이상 늘었고 향후 반세기 이내 세계최고령사회진입이 예상되고 있다.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의 노인빈곤율과 노인자살률, 또한 최저 수준의 출산율은 인구리스크(Demographic Risk)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지표다.

독일의 재상 비스마르크(Bismarck)가 세계최초로 노령연금제도를 도입한 것은 갑오경장이 일어날 무렵이었다. 당시 우리보다 길었을 독일의 평균수명이 40대에 머물었다니 100세 시대(Homo Hundred)를 사는 오늘날을 그도 예견하지 못했을 듯하다.

60년 만에 맞는 청마(靑馬)의 해에 노마를 생각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미래는 결국 인적자원의 효율적이고 총체적인 활용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물론 청년실업해소가 급박한 당면현안임에 틀림없다. 그러나앞서 언급한 포럼에 같이 참석했던 노동경제학의 세계적 권위자요 일본의 정년연장정책을 이끌어낸 세이케 아쓰이 게이오대학 총장의 말처럼 ‘노인고용확대가 청년실업증가를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노인고용과 청년고용은 상호보완적’이라는 검증된 주장은 경청할 가치가 충분해 보인다.

기초연금법은 이번 2월 임시국회에서 다룰 핵심법안이다. 국민연금과의 연계를 통한 차등지급여부와 지급대상(65세 이상 중 소득하위 70% 또는 모든 노인)이 쟁점이다. 도입취지에는 모두 공감하지만 결국‘복지재정의 지속가능성과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이라는 원칙을 잊어서는 안 되고, 차제에 복지지출의효과극대화와 생산적 복지체제구축을 서둘러야 한다. 노후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 연금지급보다 노인일자리가 더 유익하다는 연구결과가 적지 않다.

새해벽두부터 미국연준(FRB) 테이퍼링(양적완화축소)파장과 중국경제 경착륙 우려 등 글로벌 경제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신흥국 외환위기 조짐과 함께 국제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이럴 때 일수록단기처방 못지않게 긴 안목에서 경제체질 강화를 위한 근본처방, 즉 투자활성화, 잠재성장률 제고, 청년과 노인 모두를 위한 일자리 창출의 선순환이 중요하다. 경상수지 개선과 재정건전성 확보야 말로 기초체력과 대외리스크 관리의 핵심이다. 특히 이 시점 복지 포퓰리즘을 경계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폰데어라이엔장관은 7명의 자녀를 둔 ‘워킹 맘’으로도 유명한데 저출산 극복노력의 일환으로 육아휴가제도 개혁에도 앞장서왔다.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아 보인다. 정부의 ‘경제혁신 3개년계획’에30년 후 미래세대를 위한 국가비전과 장기과제 해결 방안에 대한 고민이 제대로 담겨지길 기대한다. ‘내일 죽을 것 같이 실행하고 영원히 살 것 같이 계획하라’는 얘기처럼.




조선일보 2014.02.06
전체 0